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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엄마의 나들이

서울, 성북> 성북동 도보나들이

 

 

 더 더워지면 도보나들이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 전부터 와보고 싶었던 성북동에 친구와 가봅니다.

지하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친구를 기다려요.

햇살은 쏟아지는데 덥지는 않고 옛 집 마루에 누워 낮잠이라도 청하고픈 이쁜 바람이 솔솔 부는 날입니다.

오늘의 계획은 무리하지않고 성북동을 돌고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에요.

남자와 데이트도 변변하게 해보지 못한 오랜 지란지교 우리는 틈나는대로 가끔 이렇게 함께

만나 노닥거리는 소소한 재미가 삶의 윤활제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행인을 무서워하지않고 낮잠을 잘랑말랑하는 동네 개 한마리와

대체 과연 먹으려고 말리시나 싶은 나물을 말리는 펼친 박스안의 나물을 보며 소소한 동네이구나 싶네요.

과하게 꾸미지않고 옛 동네 정취가 남아있는 성북동에는 멋스러운 꽃가게, 옷가게들이 보입니다.

분식가게, 사진관, 시계방, 기름집 등 간판도 친구와 학교다닐 적 바로 그 모습이라 웃음이 나오네요.

약간 힘들지 않게 직진방향으로 걷다보면 선잠단지라고 조선에 옷감짜는 일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는

작은 홍살문이 보입니다.

작은 마당같기도 한데 가까이 인접해있는 창들이 빼곡히 달린 주택들은 아침에 정말 좋겠거니 싶네요.

앞 쪽으로 가다가 오른쪽 길에는 간송미술관이 있습니다.

5월과 10월 , 일년에 두 차례만 간략하게 전시회를 볼 수 있다고 해서 기대하며 갔더니 긴 긴 줄이.....

한 시간 정도는 가뿐히 기다려야한다는...절에서 만든 식재료를 팔고 계신 아주머니들의 말씀에

발길을 돌립니다.

초록 대문에 뭔 포스터가 있어 보니 카페에서 집결해서 성북동구경을 한다는 것이더군요.

동네마실 분위기로 우르르 몰려다니면 ㅋㅋㅋ

 

 

서울 구립미술관에 들어가봅니다.

우리나라의 고흐같으신....윤중식님의 그림을 2,3층으로 관람하고 친구와 어쩌니 저쩌니 이야기도 해봅니다.

친구와 나는 화가도 아니고 문학가도 아니지만 가끔은 화랑이나 좋은 펜션을 함께 하는 어느 곳에서

노년을 함꼐 보내보까 하는 이야기도 하곤 하거든요.

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닌 내 자신과 친구와의 소통을 위한 예술은 인생의 한 장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미술관 들어서기 전엔 아주 특색있고 재미있는 덕수슈퍼마켓을 볼 수 있습니다.

우하하..그저 웃음이 피식 나오는 장소던데요.

오래 전 흐르든 개천이 있었는지 쌍다리 위에 구멍가게는 슈퍼마켓이 되고, 다리 아래로도 집들이 있는 것으로보아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데..무지하게 여름에 덥겠구나 싶었어요.

갑자기 뜨거운 양철지붕위에 고양이라는 문구가 떠오르던데요...

성북동에는 덕수말고도 간판이나 지나가는 스쿨버스 이름이 너무나 친근해서 막 웃음이 나옵니다. 흐드득....

 

 

시립미술관 바로 옆으로는 소설가 이태준 선생의 집인 수연산방도 있습니다.

카페로 이용되고 있던 데 작은 사이즈의 전통가옥과 우물 등 아기자기해서 좋은데 국문학을 전공한 친구께서

엄총스레 유명하신 분이라고 해서 나의 무식을 실감합니다.

저 분이 지은 황진이가 그 황진이렸다~~~

 

 

성북동은 잘 사는 동네 혹은 맛집이 많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보지 않았고 먹어보지 않았으니 뭐라 할 수 는 없지만 운치는 있더군요.

딱..고냥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랄까...

제가 좋아하고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사동, 안국동, 삼청동 길들은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정적의 기운 보다는 훗훗한 서두름의 느낌이 있어서 조금은 피해지고 픈데....

성북동은 조금은 시간이 멈춘 듯한 나의 학창시절에 느꼈던 동네의 감성이 있어 친구와 추억에

잠기기 좋은 장소 같습니다.

길가 주택들은 개조되어 음식점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었지만 과하거나 번잡스럽지 않아서 좋구요.

지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랜 전통의 설렁탕, 만두국, 보리밥, 돈가스 집을 바로 볼 수있답니다.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승려 시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남향의 일제 총독부를 마주하지 않겠노라하여

북향으로 지었다는 심우장에 오릅니다.

나는 설명해주려고 확인까지 하고 갔는데 친구는 고냥 술술 읊는것이 과연

문학 전공자다운 면모를 몇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움은 힘이더군요 ㅜ,ㅜ

완전 산 언덕 집들을 옆으로 하고 오르면 추억이 방울방울 하며 영화처럼 과거여행을 하는 듯 해요.

조금 땀이 날 무렵 일반 가정집 스러운 대문이 달린 심우장 간판을 마주합니다.

작고 조용하나 지대가 높으니 성북동의 모습이 시야에 쏘옥 들어오는 귀염성 짙은 집인데요.

조금은 오래된 듯한 그의 초상화가 안타까운 ....가능하면 그의 책들이라도 빼곡했으면 싶은 마음였어요.

나의 침실로라는 제목만으로도 얼굴이 벌개졌던 중학교 시절에 그래도 궁금하여 내용을 읽었거늘...

아주 고상하리만큼 딱딱한ㅡ

 전혀 제목과는 별개스런 내용에 조금은 실망했었던 기억을 끌어내며...

역시나 본성을 찾는다는 심오한 뜻의 심우장은 너무도 소박하여 좀 더 실망스러웠습니당.

 

 

맛집이라며 남동생이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한 참을 대기하곤 들어가 맛봤다는 만두국집이 저집이겠거니

한 성북동집과 친구와 나의 맘에 쏘옥 드는 의상들도 구경하고 아이들이 있다보니 재미있겠거니 하고

사진 찍어본 발모양이 그려진 단화와 가면, 의상들을 보니 또 간질간질 소소히 재밌습니다.

쥔장의 사진도 몇 장 걸려있던데 오픈 시간 전이지만 자유스럽고 유머러스할 그가 궁금해지더군요.

 

 

친구와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아이고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간판을 못봤네요, 뭐였더라....

(씨리어스 델리입니다.ㅋㅋㅋ)

넉넉한 양에 움찔대는 샐러드 하나와 치즈가 넘치다못해 질질거리는 피자 한 판에..

우리는 입이 앙..벌어졌습니다.

고래도 포장도 안하고 거의 다 먹었어요.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저래 좋기만하여 생맥주도 마셨는데..

술술 넘어가드라니까요..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나와서 카페테라스에서 오랫동안 줄줄줄 그때 그때 궁금했던 것도 질문하고

친구와 추억도 곱씹으며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요런 여유는 가족이나 부부 사이에서는 느끼기 힘든 즐거움이거든요.

 

* 씨리어스 델리: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3-12

 

 

 

맥주가 4잔이 넘어가도록 뜨거워진 햇살 속에서 길어지던 대화의 시간은

따로롱 ..걸려오는 그녀의 핸폰소리에 일단락 됩니다.

그렇게 오래 학교를 같이 다녔음에도 나이를 먹어도

맨날 했던 말 또하고 했던 얘기 또해도

항상 즐거운 나의 지란지교와 틈나는 대로 서울 지하철로 숨겨진 동네들 쑤시고 다녀볼라구요.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서울살이 지란지교들은 이제 막  싸돌기 시작 땅입니다.